학교·학원이 싫은 아이, 공부 거부 뒤에 숨은 진짜 감정 읽기
부모가 놓치기 쉬운 심리 신호와 소통법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오늘도 학원 가야 돼? 제발 하루만 쉬면 안 돼?"
이런 말을 반복하는 아이를 볼 때, 부모는 흔히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나 학원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공부가 싫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어떤 아이는 또래 관계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어떤 아이는 반복되는 실패 경험과 낮은 자존감 때문에, 또 다른 아이는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학교와 학원을 거부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약 28.3%가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경험이 자주 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학업 스트레스’와 ‘친구 관계’가 상위에 올랐다.
심리적 신호를 감지하는 부모의 민감성
부모는 아이의 ‘학교 거부’ 행동을 문제로만 바라보면, 자칫 중요한 심리적 신호를 놓칠 수 있다. 아동청소년 심리상담사 박은영은 한 인터뷰에서 “아이의 학습 거부는 종종 감정의 표현이며, 특히 우울, 불안, 자존감 저하와 연결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실제로 청소년기 우울증 초기 증상 중 하나로 ‘일상 회피’가 포함되며, 학교나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행동은 일종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에 실린 논문(최지현 외, 2021)에 따르면 ‘학업 회피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의 상당수는 자기효능감이 낮고, 감정 표현이 억제된 경향을 나타낸다’고 분석된다.
아이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이유
아이들이 “학교가 싫다”고 말할 때, 부모는 흔히 “게으른 건 아닌지” “공부하기 싫은 핑계는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 드러난 이유는 다양하다.
- 사례 1: 중1 여학생 / 대인기피와 불안
13세 지민(가명)은 2학기 들어 학원 수업에 자주 결석했다. 상담을 통해 밝혀진 원인은 학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느끼는 위축감과 발표 시간의 긴장 때문이었다. 아이는 "자꾸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선생님이 질문할 때마다 가슴이 뛴다"고 표현했다. 이는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의 초기 양상과 유사한 감정적 반응이었다. - 사례 2: 초6 남학생 / 부모와의 갈등
초등학교 6학년 민준(가명)은 갑자기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며 매일 아침 배가 아프다고 했다. 상담을 통해 밝혀진 건, 시험 성적에 대해 항상 비교하고 실망하는 부모의 반응이었다. 아이는 "공부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니까 그냥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부정적 강화와 자율성 침해로 인한 무기력 학습 태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 사례 3: 고1 남학생 / 진로 정체감 문제
고등학생 시우(가명)는 "공부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학원에서 자꾸 졸고, 빠지는 일이 잦았다. 부모는 성적 문제로 고민했지만, 상담 결과 시우는 본인의 진로와 정체감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시우는 “수능만 보고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정체감 혼란과 진로 미결정 상태에서 오는 무기력을 보여준다. - 사례 4: 중2 여학생 / 학업 완벽주의와 자기비판
중학생 유나(가명)는 시험 전마다 학원을 빠지고 싶어 했다. 이유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유나는 매번 자기 성적을 부모 기준에 맞추려 애쓰다가 오히려 공부를 피하게 되었고, “나는 뭘 해도 부족한 사람 같다”는 자기비난을 반복했다. 이는 높은 기준과 낮은 자기수용이 충돌할 때 생기는 회피 반응의 전형이다.
학원·학교 회피는 감정 조절과 연결되어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김지수 교수는 "아이들은 감정 조절 능력이 미성숙할수록 현실 회피 경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하며, 감정적 스트레스 해소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학업 압박이 가중되면 쉽게 ‘거부 행동’으로 전환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부모가 ‘왜 싫은데?’라고 묻는 것보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물을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소통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될 때 동기가 생긴다. 학원이나 학교가 이 욕구를 해치는 방향으로 운영될 경우, 아이는 본능적으로 회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자율성이 침해된 상황에서 부모의 통제적 언어가 반복되면, 동기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취약성 모델(Vulnerability-Stress Model)**은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과 외부 스트레스 요인이 상호작용할 때 문제 행동이 나타난다고 본다. 즉, 아이가 타고난 감정 민감성이나 기질을 갖고 있는 경우, 학업 스트레스와 결합되어 학교·학원 거부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의 태도: 잔소리와 조언 사이
아이의 "학원 가기 싫어"라는 말에 부모가 “그럼 넌 뭘 할 수 있냐”, “이 세상에 공부 안 하고 살 수 있는 줄 아냐”라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게 된다. 이는 지시형 대화의 폐해로, 미국 심리학자 토마스 고든이 말한 **‘닫힌 대화’**의 전형이다. 반면, 감정을 수용하고 열린 질문을 던지는 부모의 반응은 아이의 심리적 안정과 자기 동기화를 이끌어낸다.
아이의 말 뒤에 숨은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원이 싫어”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너무 힘들고 숨이 막힌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따라서 “뭐가 제일 힘들어?” “너 나름대로 계획이 있니?”처럼 감정을 묻고, 선택지를 제시하는 대화 방식이 효과적이다.
쉬고 싶다는 아이, 무조건 허용해도 괜찮을까?
아이의 거부 반응에 너무 쉽게 "그래, 그럼 당분간 쉬자"라고 허용해버리는 것도 주의가 필요하다. 자기조절능력은 훈련 없이 생기지 않으며, 단순한 회피를 허용하면 장기적인 무기력과 학습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되, 일정한 학습 구조와 리듬은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경우 "대신 너가 정한 시간에 자기주도학습을 해보는 건 어때?"와 같은 대안 제시형 소통이 필요하다. 이는 **행동 수정이론(Behavioral Modification Theory)**에서 말하는 ‘부정적 자극을 제거하되 긍정적 대안을 설정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전문가의 조언: 강요보다 회복이 먼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유미 박사는 "공부 거부 현상이 반복될 때는 학습능력 자체보다 정서적 회복력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만성적인 학원 거부, 등교 거부, 무기력 증상이 동반될 경우에는 청소년 우울장애, 주의력결핍장애(ADHD), 반항장애(ODD) 등의 가능성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아이가 일상에서 활력을 잃고 자주 피곤해하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전문적인 평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모 자신의 감정 상태도 중요하다. 부모가 무력감, 분노, 실망감을 자주 느낀다면 아이의 감정과 연결되며 상호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부모의 자기 조절이야말로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정서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소통의 회복이 해답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늘 “공부해라”는 말 대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너는 어떤 방식이 편한 것 같아?”라는 열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은 관계의 기초이며,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그 어떤 학습 계획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부모 자신도 “나는 너를 믿고 있다”는 감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아이의 성장 곡선을 함께 그리는 동반자가 될 때, 학교와 학원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아이의 거부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여다보는 순간,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청소년 상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의 언어폭력, 아이 뇌와 마음을 망가뜨린다” (1) | 2025.04.11 |
---|---|
사회성 없는 엄마, 혼자인 아이 – 관계를 피하는 부모의 그림자 (0) | 2025.04.10 |
무표정한 부모, 감정을 잃어버린 아이 – 정서적 회피의 대물림 (0) | 2025.04.10 |
“나는 못했지만 너는 잘해야 해”라는 말의 심리학적 함정 (0) | 2025.04.10 |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이렇게 변합니다” –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할 차이 (0) | 2025.04.08 |
"숙제해!"가 통하지 않는 이유, 말투만 바꿔도 아이가 달라집니다 (0) | 2025.04.08 |
성적보다 더 중요한 부모의 역할, 교사가 바라는 학부모의 진짜 모습 (0) | 2025.04.08 |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과 미디어 리터러시 – 손 안의 세상에 휘둘리는 아이들 (1)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