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상담

청소년기의 정서, 그 격동의 파도 속에서

insight6473 2025. 4. 4. 16:17

청소년기는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정서는 그만큼 강렬하고, 불안정하며, 때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 화가 나면 감정을 폭발시키고, 때로는 말없이 문을 닫고 방에 틀어박히는 일도 빈번하죠.
부모는 당황하고, 교사는 지치며,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상담사로서 저는 이 시기의 정서를 단순히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서를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청소년기의 정서가 어떻게 흘러가고 변화하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청소년기의 정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가요?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빠른 성장과 성호르몬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이런 신체 변화는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기의 정서는 전반적으로 강렬하지만 일관성이 없고,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은 감정이 쉽게 폭발하거나,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죄책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러한 정서 특성 때문에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뇌 발달과 관련된 생물학적, 심리적 특징에 기인합니다.


시기별로 달라지는 정서의 특징

청소년의 정서는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눠 시기별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1. 청소년기 전기 (초등 고학년~중1 수준)

이 시기의 청소년은 신체적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급격한 성장, 성적 충동과 성에 대한 의식이 생기며,
이러한 신체적 경험에 대한 두려움, 혼란,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갖습니다.

이들은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며,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해 좌절과 분노를 쉽게 느끼곤 합니다.
이 시기에는 친구와의 경쟁, 부모의 기대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외부 자극에 강하게 연결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례: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나가요…”

중학교 2학년 수현이는 짜증이 나면 말을 하지 않고 주먹을 꽉 쥐곤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을 놀렸다는 이유로 책상을 밀치고,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선생님께 수현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냥 다 싫어요. 화가 나면 말이 안 나오고, 손이 먼저 움직여요.”

수현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감정을 구분하는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짜증’, ‘화남’, ‘억울함’, ‘실망’처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해보게 했고,
분노가 올라올 때 ‘멈춤 → 이름 붙이기 → 대안 찾기’라는 단계를 훈련했습니다.

몇 차례 상담 후, 수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똑같은 일이 생겨도 손이 아니라 입부터 열어요.”

정서조절은 결국 훈련 가능한 ‘기술’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2. 청소년기 중기 (중2~고1 수준)

중기 청소년은 정서의 강도가 더 높아지고,
감정이 외부로 분출되기보다는 내면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은 불안과 분노, 고립감으로 뒤섞여 있죠.

또래와의 관계, 외모에 대한 민감한 비교, 학업 스트레스는
이 시기의 정서적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됩니다.
특히, 자의식이 높아지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도 자주 관찰됩니다.

3. 청소년기 후기 (고2~고3 수준)

이 시기의 정서는 비교적 안정화되기 시작하지만,
그만큼 사회적 가치와 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진로,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면서
청소년은 자신을 성숙하게 보이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자아감 속에서 감정 기복을 겪습니다.

이들은 이제 자기 조절력과 통찰력을 조금씩 갖추어 가는 시기이며,
감정을 억제하거나 표현하는 방식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집니다.
이 시기부터 청소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위치를 고민하고,
조화와 타협을 시도하려는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격동의 정서, 원인과 표현 방식은?

청소년기의 정서적 반응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을 가집니다.

1. 정서 반응이 격하고 지속적이다

청소년은 분노, 슬픔, 실망 등의 감정이 격하게 일어나고,
그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고, 감정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이 복잡하다

어린아이의 경우 불쾌한 정서의 원인이 주로 ‘신체적’인 대상이라면
청소년은 사회적 관계나 심리적 자극에서도 불쾌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잔소리, 친구의 비난, 외모에 대한 불만,
성적 실패, 비교당하는 경험 등이 정서를 크게 흔듭니다.

3.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숨기거나 왜곡하는 경향

청소년의 정서표현은 직접적이기보다는 억제되고 내면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울한 감정이 분노나 무기력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일이 잦습니다.
이로 인해 청소년의 정서는 쉽게 비행, 공격성, 도피적 태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례: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

중학교 3학년 민재는 한동안 부모와의 대화는 물론, 친구와의 소통도 꺼렸습니다.
상담실에서도 “괜찮아요”,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관찰 끝에 알 수 있었던 것은, 민재가 겪고 있는 건 ‘무기력’이 아니라 깊은 슬픔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몇 차례의 상담 후, 민재는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실은... 성적이 떨어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외된 느낌이 들어요.”

“근데 이런 말 하면, 엄마는 실망할까 봐 더 숨기게 됐어요.”

민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부끄럽고 위험한 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약함’이 아닌 ‘정서적 힘’이라는 걸 함께 알아갔습니다.
이후 민재는 더 이상 혼자 끌어안지 않고,
필요한 순간엔 말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정서, 이렇게 도와줄 수 있어요

  • 감정을 억누르거나 판단하지 말고, 인정하고 들어주세요.
    “그렇게 느낄 수 있어.” “이런 기분일 수 있겠다.”
  • 정서를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 어떤 기분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너는 어떤 느낌이 들었어?”
  • 정서표현이 서툰 아이에게는 관찰을 통한 공감 표현이 중요해요.
    “요즘 말수가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네. 무슨 일 있었니?”
  • 필요할 땐 전문가와 함께 감정 조절 훈련을 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청소년의 정서는 불안정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은 ‘위험’이 아니라 ‘성장’의 징후입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시기, 부모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기다려주고,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상담실에서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은 감정을 배우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안전하게 다뤄질 때,
비로소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힘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